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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소개 웨이퍼 프로버 세계 3위, 유완식 쎄믹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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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댓글 0건 조회 1,501회 작성일 20-03-1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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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완식 쎄믹스 대표는 “좋은 장비를 고객에게 납품하고 직원들의 행복을 향상하는 것이 회사 운영의 목표다”고 말했다. 
(사진=박경훈 기자) 

 

[광주(경기)=이데일리 박경훈 기자] “원래 떠들고 상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정체에 빠지자 사내에 이야기 소리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고 저 먼저 바뀌었죠.”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반도체 검사장비(웨이퍼 프로버) 제조사인 쎄믹스에서 만난 유완식(57) 대표는 여느 중소기업인보다 유쾌한 성격이었다. 솔직한 입담 속에서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경영사는 롤러코스터로 비유된다. 유 대표는 2000년 ‘창업’부터 2007년 ‘코스닥 상장’까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이듬해 ‘글로벌금융위기’로 인한 ‘회사 매각’이라는 위기 또한 겪었다. 쎄믹스는 이를 딛고 연 매출 390억원의 세계 3위 웨이퍼 프로버 업체로 도약했다.


웨이퍼 프로버 제조는 진입 장벽이 높은 산업군으로 평가받는다. 업계추산 전 세계 4000억원 시장에서 해외 매출을 올리는 업체는 TEL(일본), 아크레텍(일본) 그리고 한국의 쎄믹스 정도뿐이다.


굴곡진 경영사를 겪으며 유 대표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소통’의 중요성이다. 그에 따르면 회사 분위기가 경영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인지 실제 쎄믹스 사내 벽면에는 ‘씽크 빅!·펀 프라이드 프로핏·토크 빅!’(Think Big!·Fun Pride Profit·Talk Big!)이라는 글귀가 곳곳에 적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큰 담론을 생각하고 거리낌 없이 서로 소통하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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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시기 ‘구조조정’ 목격 후 창업 꿈꿔

유 대표는 1999년까지 LG산전(현 LS산전(010120))에서 공작기계 제어기 연구개발업무를 맡았다. 천상 연구 체질이었던 그가 창업을 택하게 된 원인은 ‘구조조정’을 본 후 받은 충격 때문이다. 그는 “직장 생활 동안 충성심 커 임원을 꿈꿨다”며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촉발된 구조조정을 겪으며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는 걸 보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걸 느꼈다”고 돌이켰다.

그렇게 함께 일했던 동료 3명과 웨어퍼 프로버 업체를 차렸다. 그는 “지금은 SK하이닉스(000660)에 인수됐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LG도 반도체 사업을 했었다”며 “LG산전에서 맡았던 웨이퍼 프로버 프로젝트를 이어 창업 아이템으로 정했다”고 전했다.

사업은 쉽지 않았다. 당시 웨이퍼 프로버를 사 줄 국내업체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005930)밖에 없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제품을 제작하고 SK하이닉스는 당시 투자 여력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한 바이어로부터 대만의 웨이퍼 테스트 기업을 만난다.

때마침 웨이퍼가 8인치에서 12인치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기존 기업들은 8인치 검사 설비에만 주력했다. 신생 회사 쎄믹스는 12인치 제품 생산에 최적화했다. 그는 “쎄믹스의 제품은 8인치 웨이퍼 검사에도 당장 적용이 가능하면서 곧 나올 12인치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더불어 파격적인 가격 경쟁력을 내세웠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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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완식(가운데) 대표가 직원들과 활쫙 웃고 있다. 
쎄믹스는 100여명 회사지만 회의실만 7개가 있어 언제나 토론이 이뤄진다. (사진=박경훈 기자)


순간의 영광, 긴 터널의 진입…소통 문화로 극복

이후 굳힘도 있었지만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다. 2007년에는 코스닥 상장도 성공했다. 하지만 이듬해 글로벌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친다. 뭣도 모르고 은행 권유에 가입했던 ‘키코’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회사는 휘청거린다. 2009년 상장사를 매각하고 새 출발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빠졌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 반도체 경기의 훈풍이 불었지만 쎄믹스는 올라타지 못했다. 신규 사업인 태양광도 좋은 성과를 보진 못했다. 하지만 쎄믹스는 숱한 난관을 겪으며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단 한 차례도 취하지 않았다.

2015년 유 대표는 생각을 다잡고 재도약을 꿈꾼다. 이때부터 ‘씽크 빅!·펀 프라이드 프로핏·토크 빅!’을 주창한다. 5년 내 5배 성장을 이루겠다는 야심도 밝혔다. 2011년 270억원에서 2014년 168억원까지 떨어졌던 매출액은 2015년 262억원, 지난해 389억원으로 기적처럼 반등했다.

매출액 상승에는 토크 빅! 문화가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경력직으로 쎄믹스에 합류한 박기택(32) 과장은 “사장께서 ‘말하는 것에 대해 어려워 하지 말아야 하고 질문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끊임 없이 주입 시켜준다”며 “직급 구분 없는 토론 문화가 회사 발전에 견인차가 됐다”고 설명했다.


박남우(40) 팀장 역시 “부하 직원들이 먼저 끊임 없이 저를 불러 궁금한 점에 대해 토론을 한다”며 “메일·메신저·서류에 익숙한 일반 기업과 차별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마지막으로 “웨이퍼 수율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며 “올해 매출액 550억원, 내년 750억원 그리고 5년 프로젝트의 마지막인 2020년 1000억원을 찍어 세계 1위 웨이퍼 프로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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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 기자, "웨이퍼 프로버 세계 3위, 유완식 쎄믹스 대표", <이데일리>,20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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